[SDG뉴스 특별대담] 성평등이 멈추면 SDGs도 멈춘다
[SDG5 성평등] 사회=박문수 SDG뉴스 대표 대담=이창언 우석대학교 교수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황선희 우석대학교 교수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박사과정·전 성남여성의전화 회장
UN Women과 UN DESA가 발간한 ‘Progress o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he Gender Snapshot 2026’은 성평등을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17개 SDGs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문제로 다룬다. 보고서가 제시한 숫자는 선명하다. 현재 속도라면 SDG 5 달성에는 171년이 걸릴 수 있다.
세계 국회의 여성 비율은 27.4%, 상장기업 여성 CEO는 5.8%, 여성과 여아의 무급 돌봄·가사시간은 남성의 2.5배, 국가 성평등 추진기구의 32%는 최근 2년간 제도적 권한이 약화됐다고 답했다.
이 숫자들은 단지 여성의 상황을 설명하는 통계가 아니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돌보고, 누가 위험을 감당하며, 누가 미래를 설계하는지를 보여주는 권력의 지도에 가깝다.
박문수=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강렬한 숫자가 171년입니다. 이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창언= 저는 171년을 예측이라기보다 사회구조에 대한 경고로 읽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SDG 5의 어떤 지표도 현재 2030년 목표 달성 궤도에 있지 않습니다. 세계 여성은 남성이 누리는 법적 권리의 약 64%만 보장받고 있고, 조사대상 131개국 가운데 51%는 법적 평등을 평가한 네 영역 모두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였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47개국에서 99건의 법률개혁이 이루어졌는데도 완전한 법적 평등에 도달한 국가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의 존재와 삶의 변화 사이의 간극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성평등은 단순한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화의 깊이에 관한 문제입니다. 법을 만들었다고 평등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조직과 예산, 노동시장, 가족관계와 일상의 관행 속에 얼마나 침투했는가를 봐야 합니다. 평등은 선언되는 순간 완성되는 가치가 아니라 계속 실천되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황선희= 저는 171년이라는 숫자를 현장에서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여성운동을 하다 보면 “법이 생겼는데 왜 아직도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법 조문 속에서 살지 않습니다. 가족 안에서 살고, 직장에서 일하고,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보고서를 보면 여성과 여아는 무급 돌봄과 가사에 남성보다 2.5배 많은 시간을 씁니다.
이 2.5배가 중요합니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자원입니다. 하루 한두 시간의 차이가 20년 쌓이면 경력, 소득, 승진, 학습, 정치참여의 차이가 됩니다.
여성학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말해왔습니다. 돌봄 역시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기회의 배분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평등을 ‘여성에게 무엇을 더 주는가’보다 누가 더 많은 시간을 돌봄에 쓰고, 누가 더 많은 시간을 자기 삶의 선택에 쓸 수 있는가의 문제로 봅니다.
“대표성은 늘었는데, 왜 권력은 그대로인가”
박문수=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분명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계속 ‘권력의 격차’를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창언= 대표성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계 국회의 여성 비율은 2015년 22.3%에서 2026년 27.4%로 높아졌습니다. 지방정부는 35.6% 수준입니다. 그런데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여성 비율은 다시 낮아집니다. 세계 경제 관련 장관 가운데 여성은 19%에 불과합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여성은 성평등위원회의 68.5%를 맡지만 국방위원회는 18.4%, 재정위원회는 17.2%에 그칩니다.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표현을 빌리면 평등은 재분배(redistribution), 인정(recognition), 대표(representation)의 세 차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여성이 의회에 들어가는 것은 대표성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산과 자원이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배분되고, 여성의 경험이 정책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된다면 재분배와 인정의 문제는 남습니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여성이 몇 명 있는가”에서 “그 여성들이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로 이동해야 합니다.
황선희= 저는 현장에서 그것을 ‘자리에 있는 것’과 ‘힘을 갖는 것’의 차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위원회에 여성이 한두 명 들어갔다고 해서 여성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누가 안건을 만들고, 회의시간을 정하고, 예산을 배분하며, 최종 결재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보고서를 보면 세계 175명의 최고법원장 가운데 남성은 144명, 여성은 31명입니다.
일반 판사 수준에서는 여성 비율이 적지 않지만 최고 권력층으로 올라갈수록 다시 격차가 커집니다.
조안 애커(Joan Acker)가 말한 ‘젠더화된 조직(gendered organizations)’의 관점이 떠오릅니다. 조직은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승진 경로, 근무시간, 리더십의 이미지와 비공식 네트워크 자체가 특정한 성별 경험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천장은 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단에도 있고, 복도에도 있고, 회의실의 말하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겹겹의 유리천장’이 보인다”
박문수=기업 지배구조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까.
이창언= 오히려 더 분명합니다.
보고서는 62개 국가·지역, 약 9,600개 상장기업의 이사 약 8만8000명을 분석했습니다. 여성은 기업 노동자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CEO는 5.8%, 이사회 의석은 25.1%에 불과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 이사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영향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분석대상 상장기업의 71.8%에서 여성 이사의 의사결정 권력이 대표성보다 낮았습니다. 대기업에서는 그 비율이 82.8%까지 올라갑니다.
보고서는 이를 ‘stacked glass ceiling’이라고 부릅니다. 유리천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는 뜻입니다.
ESG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은 단순히 인원구성을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전략을 만들고, 자본을 배분하고, 위험을 정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황선희= 노동시장에서도 비슷합니다.
여성 관리자 비율은 세계적으로 2015년 26.9%에서 2025년 30.5%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자료가 있는 83개국 중 66개국에서 여성 관리자의 시간당 임금이 남성 관리자보다 낮았습니다.
그러니까 승진했다고 불평등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도 중요합니다. 모든 여성이 같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여성, 이주여성, 저소득 여성, 비정규직 여성은 여러 불평등이 겹쳐집니다.
실제로 보고서를 보면 장애여성의 고용률은 23%로, 비장애여성 46%, 장애남성 34%보다도 낮습니다.
평균적인 ‘여성’ 하나만 보고 정책을 만들면 가장 취약한 여성은 다시 보이지 않게 됩니다.
“3명 중 1명이라는 숫자가 말하는 것”
박문수=여성폭력 수치도 상당히 무겁습니다.
황선희= 네. 전 세계 15세 이상 여성 가운데 거의 3명 중 1명, 약 8억4000만 명이 평생 배우자 또는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최근 12개월만 보더라도 3억1600만 명이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여성폭력이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피해자는 어느 특별한 집단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고, 가정에도 있습니다.
여성폭력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발생 이후 처벌만이 아닙니다. 신고 이후 주거와 생계, 아이 돌봄, 법률지원, 직장 복귀까지 연결돼야 합니다.
평화학에서는 평화와 안전을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창언= 저는 여기에서 SDG 5와 SDG 16이 만난다고 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3개국 조사에서 여성 국회의원 후보의 80%, 지방선거 여성 후보의 63%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심리적·성적·경제적 또는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참여하라고 하면서 참여의 비용이 여성에게 훨씬 높다면 형식적 참여만 있을 뿐 실질적 평등은 없습니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이 말했던 포용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권을 주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말할 수 있고, 들릴 수 있고,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평등 기관은 있는데, 힘은 줄어든다”
박문수=이번 보고서에서 성평등 정책 자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약화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창언= 저는 이것을 제도적 역설이라고 봅니다.
국가 성평등 추진기구를 대상으로 한 2026년 조사에서 32%가 최근 2년 동안 제도적 권한이 약화됐다고 답했습니다. 23%는 운영예산이 줄었고, 9%는 독립적인 예산권을 잃었습니다. 제도는 남아 있는데 힘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사회학에서는 제도와 실제 작동 사이의 괴리를 ‘형식적 제도화’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조직 이름은 남아 있어도 권한과 예산, 조정능력이 없다면 제도는 껍데기가 됩니다.
지속가능발전 거버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원회의 숫자가 아니라 결정권, 예산권, 평가권을 봐야 합니다.
황선희= 여성운동 현장에서 예산은 훨씬 구체적인 언어입니다.
예산이 줄었다는 것은 상담원을 한 명 줄여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고, 피해자를 한 달 더 지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평등을 목표로 하는 양자 ODA는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13% 감소했고, 여성권리단체에 대한 지원은 28% 줄었습니다. 원래 여성권리단체에 돌아가던 몫도 성평등 ODA의 1% 미만이었습니다.
인도적 위기지역 여성단체 조사에서는 88%가 기존 수준의 지원을 더 이상 제공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돈은 가치중립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예산은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문장 중 하나입니다.
“29억 명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결정권은 27%”
박문수=기후위기와 성평등의 관계도 보고서가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창언= 그렇습니다.
세계 여성과 여아 약 29억 명이 기후변화와 지구물리학적 위험에 높거나 매우 높게 노출된 국가와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 분야 장관 가운데 여성은 27%, 에너지·천연자원·연료·광업 분야 장관은 12%에 불과합니다.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과 위험을 정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이것은 기후정의의 문제입니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론을 빌리면 현대의 위험은 사회 전체에 확산되지만 결코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습니다. 위험은 보편적일 수 있지만 노출과 회복능력은 계층과 성별에 따라 다릅니다.
황선희= 보고서의 아주 구체적인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집 안에 물이 없는 가구의 70%에서 여성과 여아가 주요 물 운반자입니다.
기후위기나 물 부족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매일 몇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길어오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여성학은 거대한 구조와 일상을 연결해서 봅니다.
정책이 추상적일수록 우리는 누가 그 정책의 비용을 몸으로 감당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AI를 누가 설계하는가”
박문수=AI 분야의 성별 격차도 상당히 큽니다.
이창언= 그렇습니다.
세계 연구자 가운데 여성은 31.4%지만 AI 전문인력에서는 약 22%, 고위 AI 리더십에서는 14% 미만입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할 가능성도 약 20% 낮다는 연구가 보고서에 포함돼 있습니다.
AI가 채용과 금융, 복지, 교육, 치안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면 누가 알고리즘을 설계하는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권력의 문제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기술도 사회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기존 불평등이 기술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황선희= 그래서 여성은 AI의 소비자로만 남아서는 안 됩니다.
데이터가 과거의 사회를 반영한다면 과거의 편견도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성이 개발, 연구, 규제, 윤리와 정책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성평등을 여성에게 보호막을 씌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에 여성이 함께 앉는 것, 그것이 더 본질적입니다.
“평화를 겪는 여성과 평화를 결정하는 여성”
박문수=평화와 안보의 숫자도 상당히 극적입니다.
이창언= 2025년 세계 평화 프로세스 가운데 거의 10건 중 8건에는 여성 협상가나 중재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무력분쟁 지점 50㎞ 안에서 살고 있던 여성과 여아는 약 7억 5610만 명이었습니다. 확인된 분쟁 관련 성폭력 사례는 약 9800건, 2024년의 4600건 보다 두 배 이상이었습니다. 분쟁의 위험에는 크게 노출되지만 평화를 결정하는 자리에는 적게 들어가는 역설입니다.
황선희= 여성운동의 언어로 바꾸면 아주 간단합니다. 여성은 전쟁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거의 없고, 전쟁의 피해는 크게 받으며, 평화를 협상하는 자리에서도 다시 빠집니다. 그래서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평화의 수혜자가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주체여야 합니다.
“성평등이 다른 SDGs를 정말 움직이는가”
박문수=그렇다면 성평등이 다른 SDGs의 진전을 실제로 촉진한다는 근거도 있습니까.
이창언= 보고서는 여러 경로를 보여줍니다.
여성의 의회 참여율이 높은 곳에서는 교육지출과 초등교육 이수율, 학교의 성평등이 함께 개선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여성의 농업 생산성과 임금 격차를 줄이면 세계 식량불안 인구를 약 4500만 명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재 추세라면 2030년에도 약 11억 명의 여성이 식량불안을 겪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즉 성평등은 SDG 5의 하위주제가 아니라 다른 목표를 움직이는 횡단적 변수입니다.
황선희= 저는 그 숫자를 삶의 언어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한 여성에게 안정적인 소득이 생기고,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돌봄을 혼자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그 변화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의 건강과 교육, 가족의 빈곤, 지역사회의 참여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평등은 한 집단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능성을 넓히는 조건입니다.
“결국 무엇을 바꿔야 하나”
박문수=마지막으로 한 가지씩만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황선희= 저는 말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여성이 발언했을 때 안전해야 하고,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며, 그 말이 제도에 닿아야 합니다. 권리의 가장 낮은 단계는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더 높은 단계는 그 말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창언= 저는 권력, 예산,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성평등 관련 예산을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국가는 4곳 중 1곳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전체 234개 고유 SDG 지표 가운데 성별 특화 지표는 53개입니다. 측정되지 않는 문제는 정책에서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평등의 핵심 질문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에게 자원이 배분되는가. 그리고 누구의 경험이 데이터에 기록되는가.
이 세 질문은 SDG 5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사회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대담을 마치며
'Gender Snapshot 2026'의 숫자는 차갑다. 171년, 27.4%, 5.8%, 2.5배, 32%, 29억 명, 22%, 10건 중 8건. 그러나 숫자 뒤에 있는 삶은 차갑지 않다.
누군가에게 2.5배는 하루의 돌봄시간이고, 5.8%는 넘기 어려운 조직의 천장이며, 32%는 힘을 잃어가는 국가기관이고, 10건 중 8건은 평화를 말하는 방에 여성의 의자가 없다는 뜻이다.
이창언 교수는 이 숫자들을 권력과 제도, 재분배와 대표성의 구조로 읽었다. 황선희 연구원은 같은 숫자를 돌봄과 폭력, 노동과 말할 권리의 경험으로 되돌려 놓았다.
결국 성평등이 묻는 것은 여성의 숫자가 아니다.
누가 사회를 정의하고, 누가 미래를 결정하며, 누구의 삶이 그 결정의 기준이 되는가.
성평등의 시계가 늦어지면 SDG 5만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빈곤과 교육, 노동, 기후, 기술, 평화와 민주주의의 시간도 함께 늦어진다.
정리= SDG뉴스 임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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