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인터뷰] 농산업 스코프3 유예 안도가 아닌 ‘혁신의 골든타임’
“790조 기후자본 빗장이 풀렸다”
[특별 인터뷰] 이창언 우석대 글로벌문화경영학부 교수(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장)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자본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대전환기가 시작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통해 향후 10년간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Climate Finance) 공급 계획과 2028년부터 시작되는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초안을 발표했다. 여의도 자본시장을 뒤흔든 이른바 ‘한국형 녹색전환(K-GX)’ 정책은 이제 비수도권 지역경제와 농산업 현장으로 파급되고 있다.
한국농업신문은 이 거대한 자본 이동이 농업과 지역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기 위해 이창언 우석대학교 글로벌문화경영학부 교수(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장)를 만났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ESG 관련 학술논문과 저서를 다수 발표하며 지속가능발전(SDGs)과 ESG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다.
“790조 기후금융, 자본흐름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연승우 편집국장은 먼저 정부의 ‘생산적 금융 대전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이창언 교수는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본의 총량보다 배분 구조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신규 기후금융의 50% 이상을 비수도권에,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투입하기로 한 점을 가장 중요한 변화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는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온 자본 구조를 바꾸고 녹색 전환의 무대를 지역으로 이동시키겠다는 정책적 신호”라며 “지역경제 기반 산업인 농업과 농산업에도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업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 산업이면서 동시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저탄소 농법, 스마트팜 고도화, 친환경 농기계 개발, 바이오 비료 등 농산업 밸류체인 전반의 전환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790조 원 기후금융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역으로 향한다는 것은 농산업 혁신을 위한 중요한 자본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라며 “농산업계가 이를 ‘생산적 금융(Productive Finance)’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의 스코프1·2가 글로벌 기업의 스코프3 된다”
이번 ESG 공시 로드맵에서 특히 주목받은 부분은 공급망 탄소배출을 의미하는 ‘스코프3(Scope3)’ 공시 유예다. 정부는 스코프3 공시를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하며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 교수는 이를 단순한 규제 완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코프3는 단순한 배출량 관리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며 “농업 분야에서는 현실이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식품기업의 탄소 배출 구조를 보면 전체 배출량의 80~95%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스코프3에 해당한다. 결국 산지 농가와 지역 농가공 기업이 배출하는 스코프1·2가 글로벌 기업의 스코프3에 반영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글로벌 기업이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협력사에 저탄소 생산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탄소 감축에 참여하지 못하면 가격 경쟁력을 잃거나 공급망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코프3 유예기간을 ‘안도의 시간’이 아니라 ‘혁신의 골든타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기계·비료 산업도 전환금융 대상 될 수 있다”
이번 정책에는 ‘한국형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제도도 포함됐다. 고탄소 산업의 녹색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 제도다. 이 교수는 농기계 제조나 화학비료 산업 같은 농업 후방 산업도 전환금융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녹색금융이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전환금융은 기존 산업이 녹색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린워싱(녹색세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그는 “전환금융이 단순한 설비 효율 개선에 머무르면 탄소고착(Carbon Lock-in)을 초래할 수 있다”며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기준 충족과 과학기반목표(SBT) 설정 등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 데이터 인프라, 중소 농기업 부담 줄일 것”
중소 농기업의 경우 탄소 데이터를 직접 산출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금융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신용정보원을 통해 기후금융 웹포털과 금융배출량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탄소회계금융연합체(PCAF) 기준을 적용해 비상장 중소기업도 업종과 매출을 기반으로 배출량 추정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인프라가 구축되면 중소 농기업이 고비용 컨설팅 없이도 탄소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며 “투명한 데이터가 자본 조달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대학, ESG 전환의 지식 플랫폼 돼야”
이 교수는 최근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에서 지역 중심 ESG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대학의 역할에 대해 “대학은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석대학교 역시 ESG와 기후위기 대응을 중심으로 실무형 인재 양성과 지역 산업 협력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역 기업들이 기후금융을 활용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대학이 학문적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회피보다 선제적 혁신이 경쟁력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농업계에 데이터 기반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수익 모델”이라며 “투명한 데이터와 선제적 혁신을 통해 농기업이 기후금융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기준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부터 측정하고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농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도 함께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승우 편집국장은 “농업과 ESG, 자본시장을 연결하는 깊이 있는 통찰을 들을 수 있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출처 : 한국농업신문(http://www.newsfar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