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10년, 이제는 '실행의 거버넌스'다
물이 메마른 대지는 소리 없이 갈라지며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다. 가뭄을 알리는 자연의 미시적인 신호처럼, 인류가 공동의 생존을 위해 약속했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모래시계도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간한 ‘2026 지속가능발전 보고서’의 냉정한 데이터들은 화려한 말잔치 뒤에 가려진 인류 거버넌스의 뼈아픈 한계와 다자주의의 위기를 무거운 성찰의 언어로 고발한다.
"어떤 목적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또한 반드시 동원해야 한다"라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오랜 철학적 가르침이 있다. 우리가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와 상생이라는 고결한 목적을 원했다면, 그것을 뒷받침할 정책과 재정이라는 구체적인 실행 수단 또한 마땅히 동원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세계는 연간 2조 9,000억 달러라는 역대 최고치의 돈을 군비를 증강하는 데 쏟아부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지구촌 곳곳의 생태계와 평화의 토대는 처참히 무너지고 있으며, 정작 기아 종식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의 손길은 철저히 메말라가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0년까지 온전히 달성할 수 있는 글로벌 목표가 단 16%에 불과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복지 선진국이라는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지키고 있지만, 그들 역시 과도한 소비를 통해 해외에 환경 오염을 전가하는 ‘문명적 부채’를 앓고 있다. 반면 글로벌 다자주의 지형은 급격히 재편되어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경제국들이 가파른 이행 성과를 보이는 사이, 미국은 독자 노선과 고립주의로 일관하며 다자주의 지지 지표에서 최하위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 거대한 격변의 좌표 위에서 대한민국이 마주한 거울은 유독 시리고 아프다. 세계 34위라는 외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2015년 이후 이행 점수 향상 폭은 겨우 +2.8%p에 그치며 심각한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과거의 이기적인 성장 방정식과 물질 중심의 정책 틀 안에서는 더 이상 생태적 동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절박한 신호다. 우리 역시 고소비·고탄소 경제 체제의 단맛에 취해,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타국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책임 있는 생산·소비 영역에서 여전히 최하위인 ‘붉은 경고등’을 끄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탐욕의 속도를 늦추고 생태적 감수성을 복원해야 할 때다. 실질적인 탄소 중립과 글로벌 공동체에 대한 책임 있는 거버넌스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생존 과제다. 디지털·AI 거버넌스 구축과 글로벌 탄소세 도입 등 보고서가 던진 포스트 2030의 과제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품어야 한다. 붉게 물든 대시보드의 신호등을 초록빛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 사회와 지역 공동체, 그리고 일상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이웃들과 함께 깊이 성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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