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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어른인가, 노인인가? …나이는 세월이 주지만, 어른의 품격은 독서가 만든다(김운우)

person ESG국가정책연구소 calendar_today 2026.10.14 03:30 visibility 조회 17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어쩌면 우리 시대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화두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시대다. 머지않아 노인이 청년보다 많은 사회가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노인이 많아지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른바 '삼전닉스'가 이끄는 반도체 호황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주식시장이 들썩이고 수출 실적이 좋아지면 경제 전체가 살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숫자 뒤에는 저출생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진다. 그 과정에서 노인은 자칫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부양의 대상, 사회의 자산이 아니라 복지의 비용으로 취급되기 쉽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평생을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지혜가 어떻게 비용일 수 있는가. 수많은 실패를 견디고, 가족을 일으켜 세우고, 공동체를 지켜온 세월이 어찌 쓸모없는 시간이겠는가.

나는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어른이 얼마나 많아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노인은 나이를 먹지만, 어른은 마음을 키운다

나는 '어른'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어른을 '얼이 큰 사람', 또는 '얼이 바른 사람'이라고 풀이해 보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엄밀한 어원 풀이가 아니라 어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나만의 해석이다.

여기서 '얼'은 사람의 정신이요, 생각이며,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렇다면 어른이란 단순히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으며, 삶의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일 것이다.

노인은 세월이 만들어 주지만, 어른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만 옳다고 고집하거나, 젊은 세대의 생각을 무시한다면 세월은 흘렀어도 정신은 성장하지 못한 셈이다.

반대로 젊은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안다면 그는 이미 훌륭한 어른이다.

노인이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때, 어른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라고 묻는다.

그 작은 차이가 세대 간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세대 간 존경을 낳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목소리 큰 노인이 아니라 마음이 큰 어른이다.

책을 읽으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그렇다면 노인은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의 하나로 독서와 토론을 권하고 싶다.

책은 세월을 뛰어넘는 놀라운 도구다.

우리는 책 한 권으로 2,500년 전 공자를 만나고,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며, 세종대왕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와 함께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빅터 프랭클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수천 년의 지혜를 만나는 셈이다. 이보다 경제적인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독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읽은 책을 놓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이다.

혼자 책을 읽으면 내 생각이 깊어진다. 그러나 함께 토론하면 내 생각의 한계를 발견한다.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이런 깨달음이 쌓일수록 사람의 마음은 넓어진다.

나이가 들면 몸의 근육은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근육까지 약해질 필요는 없다. 운동으로 몸의 근육을 단련하듯, 독서와 토론으로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이것을 '정신의 근력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헬스장에서 아령을 들면 팔 근육이 단단해지듯, 책을 들고 토론하면 생각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무엇보다 좋은 점이 있다. 독서에는 정년이 없다는 사실이다.

70세에 시작해도 늦지 않고, 80세에 새로운 철학을 만나도 좋다. 90세에 처음 읽은 시 한 편이 평생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몸의 나이는 되돌릴 수 없어도 생각의 나이는 얼마든지 젊어질 수 있다.

청년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서가 노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세대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지식을 검색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순식간에 답을 얻는다.

그런데 정보가 많다고 지혜까지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질수록 긴 글을 읽는 인내심이 부족해지기 쉽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생각만 접하다 보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해할 기회도 줄어든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무엇이 올바른 질문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부족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서가 중요해진다.

검색은 답을 알려주지만, 독서는 질문을 만들어 준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정리해 주지만, 그 정보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결국 인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생의 풍파를 견뎌온 선배 세대의 경험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청년은 새로운 기술을 알고, 노인은 세월이 가르쳐 준 지혜를 안다. 청년은 미래를 향해 달리고, 노인은 지나온 길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바라본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알프스를 넘은 것은 백마가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장면을 기억한다.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유명한 그림 때문이다. 바람에 망토를 휘날리며 앞발을 치켜든 백마 위의 나폴레옹은 영웅 그 자체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모습은 달랐다.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을 때 험한 산길에 적합한 노새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새는 수탕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동물로, 말의 힘과 당나귀의 강인함을 함께 지녔다.

화려한 백마보다 묵묵히 험한 길을 걷는 노새가 알프스에서는 더 유용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마를 탄 영웅 한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장점을 결합해 험난한 시대를 함께 넘어갈 지혜다.

청년의 패기와 노년의 경륜이 만나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지혜가 만나야 한다. 빠르게 달리는 힘과 올바른 방향을 판단하는 힘이 만나야 한다.

그 둘을 이어 주는 가장 좋은 다리가 바로 독서와 토론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청년이 책을 읽으며 오래된 지혜를 발견한다면 세대 간의 벽은 낮아질 것이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순간, 나이는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자산이 된다.

청년의 속도에 노년의 깊이가 더해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험난한 알프스를 넘을 수 있다.

오래 사는 사회를 넘어, 함께 잘 사는 사회로

초고령사회가 반드시 불행한 사회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 온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시대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노인이 많아지는 것이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지혜로운 어른이 많아지는 것이 사회의 축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작은 제안을 하고 싶다.

동네마다 시니어 독서토론 모임을 만들자.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장소를 넘어 책을 읽고 세상을 논하는 지혜의 사랑방이 되도록 하자.

여기에 청년들도 초대하자.

할아버지와 대학생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은퇴한 직장인과 취업준비생이 인생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곳에서는 나이가 벼슬도 아니고, 젊음이 특권도 아니다. 오직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이런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외로움은 줄어들고, 세대 간 이해는 깊어지며, 우리 사회의 신뢰와 행복도 커질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사람의 품격과 공동체의 신뢰가 높아진다면 그것 또한 중요한 사회적 성장이다. 더 나아가 경험과 지혜가 사회 곳곳에서 활용된다면 경제적 활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선진국은 노인을 단순히 부양하는 나라가 아니라, 노인의 경험을 존중하고 어른의 지혜를 사회의 자산으로 만드는 나라가 아닐까.

이제 글을 맺으며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지금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른으로 익어가고 있는가?"

늙어간다는 말에는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익어간다는 말에는 향기가 있다.

과일도 익어야 단맛이 나고, 술도 숙성되어야 깊은 맛이 난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세월이 흐를수록 고집이 아니라 지혜가 쌓이고,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늘어나며, 남을 가르치려는 마음보다 남에게 배우려는 마음이 커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답게 나이 드는 모습일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책 한 권을 펼쳐 보자. 그리고 누군가와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 작은 실천이 나를 바꾸고, 이웃을 바꾸며, 마침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노인은 세월이 만들지만, 어른은 배움이 만든다.

노인은 나이를 더하지만, 어른은 세상에 지혜를 더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노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어른은 누구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년이 깊어질수록 얼이 커지고, 청년이 성장할수록 얼이 바르게 서는 사회. 그런 사회라면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대한민국을 꿈꾼다.

노인은 어른으로 익어가고, 청년은 어른으로 자라나는 나라.

그 나라의 미래는 분명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더 지혜로우며, 더 행복할 것이다.

 

김찬우 | 금강대 전 총장대행,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부회장, 우석대학교 ESG국가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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