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 대량해고 현실로…법의 공백, ESG가 메울까[ESG와 노동인권②]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예상은 이미 현실이 되어 우리의 노동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아마존, MS 등 미국의 거대 빅테크 기업들은 작년 한 해 AI 도입을 이유로 수만 명의 근로자를 해고했고, 이런 해고 사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해고 근로자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량 해고가 앞선 코로나 팬데믹 때와 같이 기업의 경영악화로 인한 일시적인 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영구적으로 대체하면서 기업들은 해고한 근로자를 다시 채용할 여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잇단 파업을 예고하면서 업종 특성상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가 큰 카카오, 현대차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와 같이 성과급을 주된 의제로 삼기보다 고용보장을 단체협약의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현대글로비스는 공정의 일부를 전자동화하면서 하청 근로자 24명을 이미 해고했다. 이는 AI로 인한 고용불안이 고용시장의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그 피해와 충격 또한 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AI발 정리해고와 법의 한계는
이런 기업의 대규모 인력 감축을 막을 법적 장치가 지금의 근로기준법 체계 안에는 없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이른바 ‘정리해고’의 요건을 ①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②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 ③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대상자 선정 ④ 근로자대표와 50일 전 성실한 협의로 규정할 뿐, 해고 자체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더 결정적인 것은 대법원이 1991년 판결부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기업 도산 회피 상황에 한정하지 않고,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회복을 위한 신기술 도입과 그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까지 포함한다고 판시했다는 점이다. AI·로봇 도입에 따른 ‘AI발 정리해고’가 정리해고의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이미 법리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를 금지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장치다. 요건을 모두 갖추면 기업은 AI·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고도 적법하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법이 “해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줄 수 있지만, “해고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국제기구들의 최근 움직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선택의 순간 :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인공지능의 활용(A moment of choice: Harnessing artificial intelligence for decent work)’이라는 제목의 사무총장 보고서를 제114차 ILO 총회에 상정했다. 제목이 시사하듯, AI가 노동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도 지난 6월 발표한 <인공지능과 좋은 거버넌스(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systems on good governance: study of the Human Rights Council Advisory Committee)> 보고서에서 이와 관련해 더 구체적인 권고를 내놓았다. 유엔은 회원국들에게 AI 자동화가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영향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교육체계를 개편하고,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사회보장 체계를 강화함으로써 노동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전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에 대해서는 AI의 설계·개발·배포 전 생애주기에 걸쳐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며, ‘인권 실사’를 수행하고 알고리즘 편향과 차별 위험을 평가·완화하며,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나 공동체와 협의하고, 실질적인 고충처리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권고의 내용은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이 제시한 ‘인권 실사’를 AI라는 구체적 기술 위험 앞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기업의 ‘해고 금지’가 아니다. 오히려 해고가 불가피할 수 있음을 전제하면서, 대신 해고를 검토하는 과정에 사전 평가와 근로자와 같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전환·지원이라는 절차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나 국내의 대량해고 사건들을 보면, 이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량해고로 인한 피해는 해고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 지역에 전파되며 종국적으로는 해고한 기업으로 되돌아와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칠 수 있다.
ESG 접근법 한계 분명…관련 입법 필요
대량 해고에 따른 근로자들의 생존권 보장과 지속가능발전 침해 문제를 법률이나 국가 정책이 충분히 다루지 못한 채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는데, 현재는 노동조합이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이런 공백을 메우고 있다.
민주노총은 올해 중앙교섭 요구안에서 AI 기술 도입이 고용안정·노동안전·인권·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하며, 도입에 앞서 사전 통보와 노사 합동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고용 보장·교육훈련 대책을 노사 합의로 도출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요구안에 기초해 현대제철 노사는 지난 8월 5일 임단협에서 AI 등 산업환경 변화 속에서도 현 조합원의 고용을 정년까지 보장한다는 원칙을 합의문에 명시했고, 현대자동차 노사도 8월 31일 AI 도입 시 노사 공동대응에 합의하며 신사업·신기술 추진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기로 했다.
이 합의들은 법이 요구하지 않는 수준까지 자발적으로 나아간 사례이다. 근로기준법은 해고 회피 노력과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만 요구할 뿐, 고용을 정년까지 보장하거나 기술 도입 경과를 상시 공유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합의가 아직 개별 대기업 노조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교섭력이 약한 하청회사에서도 이 같은 합의가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ESG는 정리해고를 불법으로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대신 근로기준법이 절차적 최소 요건으로만 규율하는 영역, 즉 해고 회피 노력의 진정성, 사전 영향평가, 노동자 참여, 사후 전환 지원을 시장과 투자자가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전환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국내 ESG 공시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ESG의 사회·지배구조 영역의 공시를 의무화 하면서, 그 내용에 “AI 도입 전 노동자 참여 절차를 갖췄는가” 또는 “해고 회피를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시도했는가”, “해고 대상자에 대한 재교육·전환 지원이 있었는가”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적법성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인적자본 관리 역량과 거버넌스 수준을 보여주는 공시 항목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흐름에는 한계가 있다. ESG 공시는 원칙적으로 자발적 규율이며, 국내에는 아직 AI 노동 전환에 대한 일관된 입법 철학이 없다. 국제규범이 권고하는 인권 영향평가나 노동자 참여권이 실질적 구속력을 가지려면 결국 입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기업이 선 자리는 분명하다. 법은 “해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만 답을 준다.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AI발 대량해고가 각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 그 결정이 조직의 신뢰와 지속가능성에 어떤 장기적 비용을 남길지를 함께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적법하게 감축한 인력을 AI와 로봇으로 대체한 기업이, 정작 시장과 투자자, 남은 구성원들로부터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지금 이 질문에 대해 기업에 요구되는 해답은 ESG적 접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