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대 이창언 교수의 지속가능한 농업] 밥상머리 양극화와 흙의 위기, 통계가 던지는 경고
국가데이터연구원이 3월 30일 펴낸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6」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상향하는 거시 경제 지표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우리 농업과 식량 안보의 구조적 한계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농업 생산성의 양극화, 자원 이용의 비효율, 그리고 먹거리 소비의 불균형이라는 무거운 과제들이 차가운 통계 숫자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먹거리의 양극화 현상이 심상치 않다. 2024년 기준 영양섭취 부족 인구 비율은 16.7%로, 2013년(8.4%)과 비교해 두 배 넘게 치솟았다. 소득의 크기가 곧 밥상의 질을 가르는 잣대가 된 셈이다. 저소득층의 영양섭취 부족 비율은 19.5%로 고소득층(14.6%)과 확연한 격차를 보이며, 20대(22.3%)와 10대(21.0%), 70세 이상 고령층(19.4%)에서 결핍이 두드러진다. 10세 이상 여성의 빈혈 유병률(12.7%) 역시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여성(16.9%)이 고소득층(11.3%)보다 유병률이 훌쩍 높고, 70세 이상과 40대에서 특히 취약성이 도드라진다.
한쪽에서는 영양 결핍에 시달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식량 낭비라는 씁쓸한 역설이 벌어진다. 2023년 한 해 동안 버려진 음식물류 폐기물만 537만 톤, 1인당 연간 104.6kg에 달한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별 편차다. 서울은 2012년 대비 17.4% 줄어든 반면, 정작 농업 생산의 근간이 되는 도 단위 지역(경기, 제주 제외)에서는 배출량이 24~80%가량 폭증했다. 식량 분배와 소비 구조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 현장의 사정은 더욱 암울하다. 농업 부문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2024년 시간당 1만 5,496원으로 2017년(2만 1,444원) 이후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농가 규모에 따른 양극화도 심각하다. 자본과 규모를 갖춘 전문농은 시간당 약 2만 5천 원의 생산성을 내지만, 일반농(7천 원), 부업농(5천 원), 자급농(1천 원)은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친다. 가족농 중심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대규모 자본을 쥔 소수에게만 생산성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촌 고령화와 맞물려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빈곤율(37.7%)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자원 이용의 효율성 또한 타 산업에 크게 뒤처진다. 2022년 기준 부문별 물 이용 효율을 보면, 서비스업과 공업 부문이 꾸준히 효율을 높여 1세제곱미터당 120~150달러 수준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과 달리 농업 부문은 고작 1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1년과 비교해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낡고 영세한 농업 기반 시설이 귀중한 수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턱없이 가로막고 있다는 뜻이다.
생태계 훼손과 기후 위기 역시 우리 농업의 턱밑까지 다가온 생존의 문제다. 2025년 기준 유엔식량농업기구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지역 가축 품종의 멸종위험 비율이 무려 94%에 육박한다. 당장의 생산성에 밀려 생물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 재난은 이미 농촌의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2024년 자연재난 사망·실종자 121명 중 89.3%(108명)가 뙤약볕 아래 무방비로 노출된 폭염 피해자였다. 최근 10년간 자연재난으로 인한 연평균 재산 피해 5,191억 원 중 80% 이상이 호우와 태풍에 집중되며 농경지를 휩쓸고 있다.
현재 한국 농업은 생산성 하락, 자원 비효율, 기후 재난이라는 복합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 벼랑 끝에서 벗어나려면 규모의 경제에서 소외된 중소농의 소득을 두텁게 보장하는 안전망이 시급하다. 농업용수 관리 체계의 현대화와 기후 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도 늦출 수 없다. 무엇보다 생산부터 소비, 폐기에 이르는 식량 가치사슬 전반의 낭비를 줄이고 공정한 분배를 고민해야 한다. 화려한 경제 지표의 그늘에 가려진 농업의 위기를 직시하고, 일상과 맞닿은 실효성 있는 정책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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