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용의 AI와 ESG 이야기] 보이는 것과 보려는 것 사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참 많다. 공기 중에 새어 나오는 메탄도 그렇고, 깊은 숲속에서 일어나는 생태계의 변화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모르고, 모르니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볼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인간은 오래전부터 눈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들었다. 이제는 위성과 센서, 카메라와 드론까지 동원해 지구를 살핀다. 덕분에 과거에는 알기 어려웠던 변화들이 방대한 데이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기록이 너무 많아 정작 중요한 변화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AI가 힘을 발휘한다. 메탄은 강력한 온실가스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존재를 완전히 감추는 것은 아니다. 위성 관측장비는 대기 중 메탄의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수많은 관측자료 가운데 어디에서 메탄이 새어 나오는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유엔환경계획(UNEP)의 국제메탄배출관측소(IMEO)는 메탄 경보·대응 시스템(MARS)에 AI를 활용해 위성 관측자료에서 잠재적인 메탄 배출 신호를 찾아낸다. AI가 의심스러운 신호를 골라내면 전문가가 다시 검토하고 확인한다.
숲속에 설치한 카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카메라는 사람처럼 피곤하다고 쉬지도 않고, 찍은 사진이 많다고 투덜대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 사진을 살펴봐야 하는 사람이다. 수개월 동안 쌓인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려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동물이 나타난 장면을 찾아내고 어떤 종인지 구별하는 데 AI 기반 영상분류가 활용되는 이유다. NASA가 추진하는 GeoAI 역시 방대한 지구관측 자료에서 패턴과 변화, 잠재적 이상 신호를 분석해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바꾸려는 흐름에 놓여 있다.
위성이든 숲속 카메라든 원리는 같다. 관측장비가 현실을 기록하고, AI가 그 방대한 기록 속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찾아내도록 돕는다. AI가 새로운 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관측한 것을 인간이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기록되지 않은 현실을 관측한 사실처럼 알아낼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문제는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측정하고, 누구의 경험을 기록하며, 어떤 변화를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AI가 분석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루어지는 선택이다.
이러한 접근은 ESG에 있어서 더욱 중요해진다. 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보려면, 누구의 경험이 데이터에 포함되어 있고 누구의 어려움이 빠져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정보가 존재하더라도 중요한 판단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사실상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나는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매퀸이 연기한 주인공은 사방이 절벽과 거친 파도로 둘러싸인 악마의 섬에 갇혀 있었다. 그는 바다를 관찰하다가 일곱 번째 파도가 유난히 강하게 먼바다로 향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용해 마침내 섬을 탈출한다.
나는 그가 파도의 주기를 알아낸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먼저 탈출할 방법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파도는 그전에도 쉼 없이 밀려오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탈출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던 바다가 그에게는 탈출할 길을 찾는 대상이 되었다. 같은 바다를 보아도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은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AI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AI라면 수많은 관측자료에서 파도의 주기와 흐름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석이 탈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려면 먼저 파도에서 탈출할 길을 찾아보겠다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AI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넓히지만, 무엇을 보려고 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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