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용의 AI와 ESG 이야기] AI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 남의 AI도 내 ESG인가
한 기업이 외부의 생성형 AI 서비스를 업무에 사용한다고 해보자. 이 기업은 AI 반도체를 만들지도, 데이터센터를 운영하지도 않는다. AI 모델을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다. 돈을 내고 남이 만든 AI를 가져다 쓸 뿐이다. 하지만, 그 AI의 뒤에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가 있고, 전력과 물이 있으며, 다시 그 뒤에는 자원과 공급망, 사람의 노동이 있다.
여기서 궁금해졌다. “나는 AI를 사용했을 뿐인데, 어디까지가 내 문제일까?” 여기서 ‘내 문제’라는 말은 AI와 연결된 모든 영향에 그 기업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앞선 질문이다. 기업이 자신의 ESG를 평가할 때 직접 만들어낸 영향만 볼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구매해 사용하는 AI와 연결된 영향도 일정 부분 평가의 시야에 넣어야 하는가.
비슷한 고민을 먼저 해온 분야는 없을까. 있었다. 탄소회계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국제 기준인 GHG Protocol(온실가스 프로토콜)은 배출을 Scope 1·2·3으로 구분한다. 이름은 낯설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Scope 1은 기업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시설과 활동에서 직접 발생하는 배출이다. 공장에서 직접 연료를 태워 나오는 배출을 생각하면 된다. Scope 2는 기업이 외부에서 구매해 사용하는 전기나 열 같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간접배출이다. 우리 회사 굴뚝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곳에서 발생한 배출까지 보는 것이다. Scope 3에 이르면 시야가 더 넓어진다. 기업이 구매한 제품과 서비스, 운송, 출장, 공급망, 판매한 제품의 사용 등 사업과 연결된 가치사슬의 여러 간접배출을 살핀다.
Scope 1에서 2, 다시 3으로 가면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인다. 내 사업장 → 내가 구매해 쓰는 에너지 → 내 사업과 연결된 가치사슬. 배출량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장부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AI를 바라볼 첫 번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의 영향에 관한 장부가 반드시 회사 담벼락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만들어내지 않은 영향이라도 내 사업을 위해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 내 사업과 연결된 가치사슬에서 생기는 영향이라면 평가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면 외부 AI를 사용하는 기업도 그 AI 뒤의 영향을 어디까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어디까지 따라갈 것인가?” AI 서비스에서 클라우드로, 클라우드에서 데이터센터로, 데이터센터에서 반도체로, 다시 장비와 소재, 광물과 에너지로 계속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Scope 3도 가치사슬을 본다고 해서 연결된 모든 배출을 끝없이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범주별로 산정의 경계가 있고, 같은 배출이 가치사슬에 있는 여러 기업의 Scope 3에 포함될 수도 있다.
여기서 두 번째 힌트를 얻는다. 경계를 넓히는 것과 경계를 없애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렇다면 Scope 3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AI에 적용하면 될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탄소회계 역시 측정과 배분이 복잡하지만 중심에는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공통된 측정 대상이 있다. AI의 영향은 환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력과 물, 자원뿐 아니라 데이터 이용과 노동, 개인정보와 편향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얽혀 있다. 관련된 주체도 여러 단계에 걸쳐 있다. 반도체와 인프라 관련 기업, 클라우드 사업자, AI 모델이나 시스템 제공자, 그리고 AI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기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Scope 3는 좋은 힌트이지만 AI 시대 ESG의 설계도를 그대로 그려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제도들을 살펴보면 이 문제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같은 가치사슬을 서로 다른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 S1(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에 관한 일반 요구사항)은 가치사슬에서 생기는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 가운데 기업의 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살핀다. 유럽의 지속가능성 보고기준인 ESRS는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과 함께 기업이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도 바라본다.
AI를 다루는 제도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창문이 보인다. OECD AI 원칙은 AI의 생애주기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주체의 역할을 고려한다. EU AI Act(유럽연합 인공지능법)는 AI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는 제공자와 업무에서 사용하는 배포자 등 역할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의무를 달리한다. 이 제도들이 기업의 AI 관련 ESG 평가범위를 직접 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여겨볼 것은 같은 가치사슬을 보면서도 무엇을 보기 위해 경계를 긋느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외부 AI를 사용하는 기업은 어디까지를 자신의 ESG 평가범위에 넣어야 할까. 하나의 선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러 제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을 평가하려는가에 따라 필요한 경계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너무 좁게 그으면 중요한 영향이 장부 밖으로 사라진다. 그렇다고 AI와 연결된 모든 것을 한 기업의 장부에 넣을 수도 없다.
처음에는 이렇게 물었다. “어디까지가 내 문제일까?”
이제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겠다. “어떤 영향을 누구의 평가범위에 넣어야 할까?”
AI 시대 ESG에 필요한 것은 경계를 무한히 넓히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경계의 설계다.
https://www.hanyang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