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용의 AI와 ESG 이야기] AI를 켤 때, 우리는 무엇을 함께 켜는가
우리는 대개 화면을 통해 AI를 만난다. 질문을 입력하면 몇 초 뒤 답이 돌아오고, 몇 줄의 지시만으로 글과 그림이 만들어진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소리도 크지 않으니, AI란 그저 화면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화면은 AI의 전부가 아니라 맨 앞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AI를 켤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함께 켜고 있는 것일까.
우선 화면 뒤에는 거대한 컴퓨팅 인프라가 있다. AI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하려면 막대한 연산을 감당할 고성능 반도체와 서버가 필요하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실어 나를 장비와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한데 품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가 작동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AI 인프라의 공급망을 분석하면서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를 하나로 이어진 구조로 바라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뒤로 가면 반도체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사실과 마주친다. 첨단 AI 반도체는 설계도 한 장으로 완성되는 물건이 아니다. 제조와 조립, 시험과 패키징이 뒤따르고, 각 단계마다 전문 장비와 소재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다시 세계 여러 지역에 걸친 공급망과 물류로 이어진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코드와 답변이지만 그 바닥에는 공장이 있고 장비가 있으며, 소재와 운송이 있다. AI는 코드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생긴다. 도대체 어디까지를 AI라고 불러야 할까.
유엔환경계획(UNEP)은 AI의 환경영향을 어느 한순간의 전력 사용량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생애주기에 걸쳐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비에 들어갈 광물과 금속이 채굴되고, 반도체와 서버가 제조되며, 데이터센터에서는 전력과 냉각을 위한 물이 쓰인다. 장비에는 수명이 있고, 교체 뒤에는 폐기와 재활용의 문제도 남는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가볍고 비물질적으로 들리지만, 그 이름에 조금 속기 쉽다. AI의 생애주기는 놀랄 만큼 물리적이다.
그렇다고 그 기반을 물질과 에너지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저절로 모이고 가지런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다뤄온 디지털 플랫폼 노동에는 AI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를 분류하고 표시하는 데이터 라벨링 같은 작업도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이런 작업의 일부가 자동화되고 있지만, AI의 개발과 운영에는 여전히 여러 형태의 인간노동이 결합돼 있다. 화면에서 마주하는 것은 기계의 답변이지만, 그 뒤에 기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시선을 한 걸음씩 뒤로 물리면 AI는 더 이상 하나의 기술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데이터와 반도체, 컴퓨팅 인프라와 공급망,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서로 연결돼 있다. 기술과 사람, 산업과 사회적 구조가 맞물려 작동하는 이른바 ‘사회기술적 시스템’에 가깝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개념의 문제가 아니다. AI의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문제 자체가 달라진다. 화면까지만 보면 성능과 속도, 편리함과 생산성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화면 뒤까지 시야를 넓히면 자원과 에너지, 물과 공급망, 노동과 폐기의 문제도 함께 보인다.
물론 질문 하나를 입력할 때마다 반도체 하나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누군가가 새롭게 데이터를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 초 만에 돌아오는 답변은 이미 구축된 데이터센터와 서버, 반도체와 공급망, 자원과 에너지, 사람의 노동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니 AI를 이해하려면 가끔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그 뒤를 볼 필요가 있다.
AI를 켤 때 우리는 AI만 켜는 것이 아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몇 줄의 답변 뒤에서 우리가 좀처럼 보지 못했던 하나의 세계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그 세계를 얼마나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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