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언 우석대 교수의 ESG 시대⑤] 일터의 안전과 노동 인권을 말하다: 산업안전보건 규제 강화에 따른 기업의 책임과 예방 전략]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 "모든 위대한 문명의 기록은, 동시에 야만과 착취의 기록이기도 하다"며 던진 이 서늘한 역사적 통찰은 오늘날 거대한 자본의 빌딩 숲을 올려다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대로 겹쳐진다.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대기업의 눈부신 성취 이면에는 위험한 공정을 공급망의 최하단으로 가차 없이 밀어내며 생존을 위협받는 하청·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착취 구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 역시 이러한 처방적 규제의 한계와 자본의 무책임이 낳은 대형 참사를 겪으며 보건안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수정해 왔다. 대표적인 이정표가 바로 1966년 10월 21일, 영국의 작은 탄광 마을에서 발생해 116명의 어린이와 28명의 성인의 목숨을 앗아간 ‘아버판(Aberfan) 참사’다.
국립석탄위원회(NCB)가 폐석 더미의 붕괴 위험을 경고한 전조 증상들을 수년간 묵살하고 은폐한 결과가 초등학교를 덮치는 대형 인재로 폭발한 것이다.
아버판 참사는 당시 영국의 산업안전 체계가 지니고 있던 구조적 태만과 법적 부조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당시 적용되던 1954년 광산 및 채석장 법은 지하 갱도 내의 안전 규정에만 치중한 나머지 지상의 거대한 폐석 더미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고 직후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이유로 해당 참사가 정부에 보고해야 할 공식 ‘보고 대상 사고’로 분류조차 되지 않는 관료적 모순이 드러나며 전 사회적인 분노를 자아냈다. 이 비극적인 현실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고, 사후에 규칙을 신설하는 사후약방문식 처방 규제를 폐기하고 기업에 포괄적인 안전 보장 책임을 묻는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HSWA) 제정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했다.
이 참사가 현대 ESG 안전 거버넌스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공장 울타리를 넘어선 ‘공공 안전(대중 보호) 의무’의 법제화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제3조는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사내 노동자를 넘어, 기업 활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반 대중, 고객, 인근 주민의 안전까지 보호해야 하는 보편적 사회계약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SFAIRP(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방법론으로서 스스로 위험을 분석하고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근간으로 확립했다.
대한민국이 2026년 가동하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재해 원인조사 범위를 화재·폭발, 붕괴 등 산업재해 전반으로 확대하고 보고서 공개를 원칙으로 명문화했다.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정당화하지 않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우리는 아버판의 교훈을 거울삼아 가치사슬 전체의 안전권을 보장하는 투명한 사회적 책임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SDG뉴스 = 이창언 우석대 교수/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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